[김영희칼럼] 조승희 광란을 넘어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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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칼럼] 조승희 광란을 넘어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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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조 키즈(Schizo kids)는 문자 그대로는 정신분열에 걸린 아이들이라는 의미로 정신과 치료의 대상이다. 그러나 구조주의 계열의 현대 철학에서 스키조 키즈는 정주(定住)를 거부하고 가정.학교.교회 같은 질서와 권위의 중심에서 이탈하여 경계지역에서 '유목민'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을 지칭한다. 버지니아공대에서 학생과 교수 32명을 사살해 온 세상을 진감(震)시킨 조승희는 스키조 키즈의 극단적인 사례로 보인다. 그는 이민 1.5세대로 정서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중간지대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부모는 고달픈 이민생활로 대화를 통해 아들이 미국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줄 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조승희가 NBC 방송에 보낸 메모와 동영상을 보면 그는 질서와 권위의 중심에서 벗어나 철저히 고립된 자신만의 세계에 혈거(穴居)하면서 부자들에 대한 원한을 키워 왔다.

조승희가 정말 정신분열증에 걸려 그런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다른 것인지, 그렇다면 정신분열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확실치가 않다. 그러나 사건은 일어나버렸다. 우리는 불타버린 집터에서 그래도 쓸 만한 살림도구를 가려내고 거기에 새집을 지어야 하는 사람의 자세로 이 사건을 봐야 한다. 거기서 얻을 교훈이 무엇인지. 한국이 입은 국가 이미지의 손실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10대와 2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재미 동포들의 피해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이런 것들이 조승희가 우리에게 떠맡기고 간 과제다.

사건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32명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이다. 그 다음이 재미 동포들과 한국이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갖는 것 말고는 없다. 미국인들이 사건을 조승희라는 학생 개인의 광란으로 한정해서 보고 한국과 연관 짓지 않는 것은 과연 큰 나라의 국민다운 태도로 참으로 다행이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이 항상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일로 한국인과 시비가 붙는다면 버지니아공대 사건을 들어 인종차별적인 폭언을 할 미국인이 있을 수도 있다. 미국에 유학 중인 학생들이 한국의 부모들로부터 미국인과 시비에 휘말리지 말라는 신신당부의 전화를 받고 재미 동포들이 언행을 조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미 동포뿐 아니라 한국의 부모들도 10대와 20대의 자녀들이 스키조 키즈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닌지 항상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밤낮 없이 인기 연예인들의 집이나 연습실 앞에 몰려들어 괴성을 지르는 중.고등학생들은 이미 반쯤은 스키조 키즈의 유목민이 된 것이 아닌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질 들뢰즈 같은 철학자에 따르면 도시의 젊은 유목민들이야말로 자본주의체제의 억압에서 개인을 해방시키는 문화혁명의 잠재적인 기수들이다. 그러나 그게 '내 자식'의 일이 되면 유목민 생활의 보람은 서양 지식인들에게 모조리 돌려주고 싶다. 100년에 한 번 조승희가 나온다고 해도 그 토양은 중심을 벗어난 유목민들의 움막일 것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공대 사건은 로마 교황을 포함한 세계의 지도자들이 유감과 애도의 뜻을 표하고 세계의 언론들이 연일 대서특필할 만큼 종말론적이다. 언론 보도에 코리안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축구의 박지성, 야구의 이승엽, 발레의 강수진, 음악의 정명훈, 노래의 보아와 비, 드라마의 배용준이 높여 놓은 한국의 이미지는 한 단계씩 떨어지는 일이 당분간은 불가피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조승희 사건이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소극적인 반응이다. 이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이라는 인상을 피하면서 넒은 의미의 민간외교와 문화외교를 펴야 한다. 그것만이 '디슨트(decent.괜찮은) 코리아'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길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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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Source: Joins.com/ JoongAng Daily
<a href="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02&Total_ID=2700697">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02&Total_ID=2700697</a>

Creator

Young-Hee Kim

Date

2007-10-19

Contributor

Haeyong Chung

Language

ko

Citation

Young-Hee Kim, “[김영희칼럼] 조승희 광란을 넘어서는 길,” The April 16 Archive, accessed November 21, 2024, https://april16archive.org/items/show/1454.